
세계 미술 거장 연재 2회에서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왕실 초상화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고야는 스페인 왕실의 공식 궁정화가였지만, 단순히 왕을 예쁘게 그리는 화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공식 초상화’ 속에, 권력의 불안과 인간적인 약점을 슬며시 숨겨 넣은 비판 화가였죠.
📑 목차
- 왕의 얼굴을 그리는 사람, 궁정화가 고야
- 왕실 초상화, 자세히 들여다보기
- 미화가 아닌 ‘관찰과 비판’의 시선
- 궁정화가에서 근대 ‘비판 화가’로
- 마무리 – 고야의 초상화를 보는 포인트
1. 왕의 얼굴을 그리는 사람, 궁정화가 고야
1-1. 태피스트리 도안 화가에서 왕실 화가로
지난 1회에서 살펴봤듯, 고야는 처음부터 왕실 초상화를 그리던 스타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마드리드의 왕립 태피스트리 공방에서 직물 벽걸이용 그림을 그리는 도안 화가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는
- 들판에서 소풍을 즐기는 귀족들
- 황소 싸움, 축제, 연애 장면
- 서민들의 놀이와 일상
을 주로 그리며,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눈을 키웠습니다. 이 경험이 나중에 왕과 왕비를 그릴 때도 그대로 살아나죠.
1-2. 귀족·왕족의 초상화 주문이 쏟아지다
태피스트리 도안이 성공을 거두자, 귀족들이 하나둘 **“우리 집 가족 초상도 그려 달라”**며 고야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의 작업을 통해 고야는
- 옷의 재질, 보석, 비단, 금실 표현
- 인물의 자세와 손동작
- 얼굴의 미묘한 표정
을 세련되게 그리는 기술을 익힙니다.
결국 그는 스페인 왕실의 공식 궁정화가로 임명되고, 왕과 왕비, 황태자, 공주, 귀족들의 초상화를 연달아 맡게 됩니다.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고야가 왕의 얼굴을 그리는 공식 화가가 된 겁니다.
2. 왕실 초상화, 자세히 들여다보기
이제 고야의 대표적인 왕실 초상화를 몇 점 떠올리면서,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2-1. ‘카를로스 3세’ – 계몽 군주의 위엄과 인간미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3세〉 초상화에서 왕은 사냥용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화려한 왕 robes 가 아니라,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옷차림이죠.
- 왕은 약간 옆을 바라보며 서 있고
- 얼굴에는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다소 피곤해 보이는 현실적인 표정이 나타납니다.
이는 카를로스 3세가 추구하던 ‘계몽 군주’ 이미지, 즉 일하는 국왕, 실용적인 국왕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나이 든 모습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고야는 왕을 미화하기보다, 존중과 현실감을 동시에 담아낸 셈입니다.
2-2. ‘카를로스 4세와 가족’ – 스페인판 왕실 가족사진
고야의 왕실 초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카를로스 4세와 가족〉**입니다. 한 화면에 왕과 왕비, 자녀들, 친척들이 모두 등장하는 일종의 왕실 가족사진 같은 그림이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그림은 단순한 기념사진이 아닙니다.
- 인물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지 않고,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약간 어색한 포즈를 취합니다.
- 왕 카를로스 4세는 화면 한가운데가 아니라 조금 옆으로 비켜선 위치에 서 있고,
- 오히려 진짜 중심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마리아 루이사 왕비에게 가 있습니다.
게다가 고야는 그림 왼편 뒤쪽에 자신을 살짝 그려 넣어 관찰자처럼 서 있게 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 권력의 중심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증인이다.”
화려한 비단과 장식, 계급의 상징들이 화면을 채우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죠. 이것이 바로 고야의 시선입니다.
2-3. 왕비 마리아 루이사의 초상 – 미묘한 긴장
고야가 그린 마리아 루이사 왕비의 초상화는, 겉으로는 권위 있는 왕비상(像)입니다. 값비싼 드레스, 보석, 화려한 장식이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면
- 눈빛에는 피로와 경계심이 서려 있고
- 입 주변에는 신경질적인 긴장이 느껴집니다.
고야는 왕비를 아름답고 젊게만 그리려 하지 않고, 권력을 쥔 사람 특유의 불안과 자의식을 솔직하게 포착합니다. 그래서 이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왕비를 존경하기보다 “저 사람도 꽤 힘들게 살고 있겠구나” 하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3. 미화가 아닌 ‘관찰과 비판’의 시선
3-1. 왜 고야의 인물들은 약간 불편하게 느껴질까?
다른 궁정화가들의 왕실 초상화를 보면, 인물들이 대개 이상적으로 아름답고, 강하고, 완벽해 보입니다.
하지만 고야의 그림에서는
- 눈 밑의 주름, 무거운 턱선
- 불안하게 굳은 입술
- 몸에 잘 맞지 않는 듯한 옷의 느낌
처럼 인간적인 약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때문에 고야의 왕실 초상화를 보면, 관람자는 종종 약간의 불편함과 현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권력을 비난하는 글을 쓰진 않았지만, 그림 속에서 조용히 권력의 민낯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비판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3-2. 왕을 그리면서 왕을 비판하다
고야는 왕실에서 월급을 받는 공식 화가였기 때문에, 정면으로 왕을 공격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 왕과 왕비의 표정
- 화면 구성과 인물 배치
- 빛이 닿는 곳과 그림자로 숨기는 곳
을 통해 **“이 가족이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위태롭다”**는 메시지를 암시합니다.
이런 시선 덕분에, 오늘날 미술사가들은 고야를 단순한 궁정화가가 아니라 근대적 의미의 ‘비판적 지식인’에 가까운 화가로 평가합니다.
4. 궁정화가에서 근대 ‘비판 화가’로
4-1. 두 세계를 모두 본 사람
고야는 한쪽 손으로는 왕실의 공식 이미지를 만들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전쟁의 참상, 미신과 광기, 민중의 고통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 왕실 초상화에서는 권력자의 얼굴을
- 판화 연작과 후기 작품에서는 권력의 폭력을
각각 보여주면서, 두 세계를 모두 체험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4-2. 왕실 초상화에서 ‘전쟁의 참상’으로 이어지는 변화
왕실 초상화 속에서 이미 불안한 시대 분위기와 권력의 취약성을 감지했던 고야는,
나폴레옹의 침공과 스페인 독립 전쟁을 겪으면서 그 시선을 더욱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전쟁의 참상〉 판화 연작, 〈1808년 5월 3일〉, 그리고 말년의 ‘흑색 회화’**입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왕실 초상화의 시선이 어떻게 전쟁과 폭력을 고발하는 그림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5. 마무리 – 고야의 왕실 초상화를 보는 포인트
프란시스코 고야의 왕실 초상화를 감상할 때, 다음 두 가지만 기억하면 훨씬 더 흥미롭게 보입니다.
- 겉은 화려하지만, 표정은 불안하다
- 눈빛, 입술, 자세에서 느껴지는 긴장을 찾아보세요.
- 누가 화면의 중심인가?
- 왕이 중앙에 서 있지 않을 때, 고야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 가족 구성원의 관계와 힘의 균형을 상상해 보세요.
고야의 초상화는 단순한 왕의 ‘기념사진’이 아니라,
한 시대와 한 왕조의 불안과 허영을 기록한 역사적 증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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