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회에서 우리는 농가의 아들에서 궁정화가가 되기까지의 고야의 삶, 그리고 왕실 초상화 속에 숨은 비판의 시선을 살펴봤습니다.
이제 3회에서는 고야가 더 이상 침묵하지 못하고, 전쟁과 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그 대표가 바로 **판화 연작 〈전쟁의 참상〉**과,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반전 그림 가운데 하나인 **〈1808년 5월 3일〉**입니다.
📑 목차
- 나폴레옹, 스페인을 집어삼키다 – 시대 배경
- 판화 연작 〈전쟁의 참상〉 – 제목 없는 공포의 기록
- 〈1808년 5월 3일〉 – 하얀 셔츠의 남자가 상징하는 것
- 고야의 전쟁 그림이 특별한 이유
- 마무리 – 오늘 우리가 읽어야 할 고야의 메시지
1. 나폴레옹, 스페인을 집어삼키다 – 시대 배경
1-1. 점령당한 나라, 휘청이는 왕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을 침공합니다.
왕실은 갈등과 혼란 끝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프랑스 쪽에 휘둘리는 허수아비 왕정처럼 되어 버립니다.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스 점령군에 맞선 시민 봉기가 일어나고, 곳곳에서 게릴라 전투·보복·처형이 이어집니다.
왕실의 초상화를 그리던 궁정화가 고야는, 이때부터 평화로운 궁정 대신 피비린내 나는 거리와 처형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1-2.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지는 진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누가 누구를 위해 죽어 가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고야는 목격자이자 예술가로서, 이 상황을 그림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판화 연작 〈전쟁의 참상〉(The Disasters of War), 그리고 조금 뒤에 그려지는 〈1808년 5월 2일〉, 〈1808년 5월 3일〉 같은 대작입니다.

2. 판화 연작 〈전쟁의 참상〉 – 제목 없는 공포의 기록
2-1. 80장에 가까운 ‘검은 연대기’
〈전쟁의 참상〉은 80장에 가까운 동판화 연작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판화들이 전쟁 중에는 공개되지 않았고, 고야가 죽은 후에야 세상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내용이 충격적이고, 당시 권력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죠.
각 판화에는 짧은 문장이 붙어 있는데, 대부분 “이것이 벌어진 일이다”, “이 또한 사실이다” 같은 건조한 말들입니다.
고야는 주석을 달지도, 영웅을 세우지도 않습니다. 그저 벌어진 일을 보여줄 뿐입니다.
2-2.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가르지 않는다
이 연작의 특징은 “어느 쪽이 더 나쁘다”는 식의 선악 구분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어떤 장면에서는 프랑스 군대가 민간인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 또 다른 장면에서는 스페인 게릴라가 포로를 잔인하게 처형합니다.
고야는 전쟁이 시작되면 누구든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전쟁의 참상〉은 특정 국가의 선전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한 반전의 기록으로 읽힙니다.
2-3. ‘영웅 없는 전쟁’의 얼굴들
전통적인 역사화에서는 장군과 영웅이 중심이지만, 고야의 판화에서 주인공은
- 겁에 질린 눈으로 도망치는 아이와 여성,
- 굶주림 속에서 쓰러지는 사람들,
- 시신을 수습하는 이름 없는 민간인들입니다.
즉, 고야는 전쟁을 **“국가의 영광”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참상”**으로 다시 정의합니다.
3. 〈1808년 5월 3일〉 – 하얀 셔츠의 남자가 상징하는 것
3-1. 한밤중 언덕 위의 처형
고야의 회화 **〈1808년 5월 3일〉**은, 스페인 미술뿐 아니라 세계 미술사 전체에서 손꼽히는 반전 명화입니다.
장면은 단순합니다.
- 오른쪽에는 총검을 장착한 프랑스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고,
- 왼쪽에는 손을 번쩍 든 스페인 민간인들이 총구를 향해 서 있습니다.
- 그 뒤로는 이미 총에 맞아 쓰러진 시신들이 피를 흘리고 있죠.
하얀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눈부시게 밝은 빛을 받고 서 있는데, 이 인물이 바로 그림의 중심입니다.
3-2. 순교자이면서,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
이 남자는 마치 십자가를 향해 두 팔을 벌린 그리스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얼굴 표정을 자세히 보면, 성스럽기보다는 극도의 공포와 절망이 담겨 있습니다.
고야는 이 인물을 통해
- 특정 영웅이 아니라 익명의 희생자를 상징하고,
- 동시에 “총구 앞에 서 있다면, 우리도 저 표정을 짓게 될 것”이라는 보편적인 공포를 보여줍니다.
화면의 빛 역시 상징적입니다.
- 군인들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
- 민간인과 시신은 밝은 빛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 배치는 힘을 가진 자가 아니라,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겠다는 고야의 선택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3-3. ‘누가 명령했는가’는 보이지 않는다
그림 어디에도 명령을 내리는 장군이나 왕의 모습은 없습니다.
총을 쏘는 군인들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고,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묘사됩니다.
고야는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이 처형을 지시한 진짜 책임자는 누구인가?
그림 속에 보이지 않는, 저 위의 권력자들 아닐까?”
4. 고야의 전쟁 그림이 특별한 이유
4-1. 국가의 영웅담이 아닌, 피해자의 시선
같은 시대 다른 나라의 역사화는 대개 전투의 승리, 장군의 용맹, 국기의 휘날림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고야는 정반대 방향을 택합니다.
- 승자의 환호 대신 죽어 가는 사람들의 비명,
- 영웅의 얼굴 대신 익명의 민중,
- 화려한 깃발 대신 핏자국과 어둠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고야는 오늘날까지 **“전쟁을 가장 솔직하게 그린 화가”**로 기억됩니다.
4-2. 현대 전쟁 사진·보도와 이어지는 시선
오늘날 우리는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쟁 지역의 민간인 피해를 사진과 영상으로 접합니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보여주는 **“피해자의 시선”**은, 사실 이미 고야가 그림으로 실험했던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 권력자가 아닌 일반인의 얼굴을 중심에 놓고,
- 누가 옳은지보다 전쟁 자체가 낳는 참상에 주목하며,
-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건 틀렸다”고 느끼게 만드는 방식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고야는 단지 옛날 화가가 아니라, 현대 보도사진과 다큐멘터리의 뿌리에 가까운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5. 마무리 – 오늘 우리가 읽어야 할 고야의 메시지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쟁의 참상〉과 〈1808년 5월 3일〉**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 이념, 종교가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전쟁의 끝은 결국 “사람이 죽고, 삶이 무너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야는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3회에서 살펴본 작품들을 기억해 두시면,
앞으로 뉴스를 보거나 전쟁 관련 영상을 접할 때,
고야의 그림이 머릿속에서 함께 떠오르며 장면을 더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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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연재에서 여러분 의견을 반영한 Q&A 형식 설명도 준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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